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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필균(睦弼均)
    시(詩)/목필균 2015. 3. 3. 16:35

     

    목필균(睦弼均) : (1954 ~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성신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2001 서울 숭례초등학교 교사.
    한국시인협회, 우이동 시낭송회 회원.
    주요 저서 시집 목록
    - 시집『거울 보기』(우이동사람들, 1998년)
    - 시집『꽃의 결별』(오감도, 2003년)
    - 시집 엄마와 어머니 사이 (2015년)
    - 수필집『짧은 노래에 실린 행복』(오감도, 2008년)

     

    밀물이면 배로 오가고
    썰물이면 걸어 오가니
    오가는 일에 무심한 눈빛
    간월도 관음도량 부처님은
    바다 속 금빛 비늘을 헤아린다

     

    은은한 달을 바라보는데
    풍경은 바람 속에 울리고
    번뇌는 머물렀다 스러지니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는 무학대사

     

    나를 낮추면 만물이 부처로 피어나고
    나를 세우면 천지가 다툼이라

     

    억겁을 돌아온 사람들이
    나를 낮추어 너를 높이고
    너를 높혀서 나를 낮추며
    간절히 원을 세울 때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반야심경 마지막 구절이 
    금빛 파도를 탄다

    (나를 낮추면 全文)


     

    눈부신 햇살이 나라고 하네미움의 그늘도 지울 수 있고힘겨운 땀도 거두어 줄 수 있는금빛 눈부심이라 하네

     

    라일락 향기도 나이고보도블록 틈새로노랗게 꽃등 켠 민들레도나라고 하네

     

    천상천하 유아독존세상을 찾아온 발걸음금빛 햇살이며꽃이 나라고 하네

     

    채우고 채우고도 모자란 세상스스로 꽃이 되고스스로 빛이 되라는큰 스님 법문

     

    내가 꽃이라 하네 (내가 꽃이라 하네 全文)


     
    법당도 아닌 안방에서
    마음의 끈 풀어 놓고
    벽을 향해 합장한다

     
    108, 107, 106......
    한 배식 지워가며
    끓어오르는 번뇌를 녹인다


    구부리기 위해 일어서고
    일어서기 위해 구부리며
    오른손과 왼손이
    빛과 그림자가 하나가 된다

     
    지우려는 기억은 또렷해지고
    또렷한 기억은 땀으로 흐른다

     
    향을 피우지 않아도
    버리고 떠나지 못한 욕심덩이가
    하늘을 향한 손바닥으로 빠져나간다

     
    마지막 고두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팔배 全文)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 해탈로 가고자 하는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엿보는 시집이다. 부처님께 올리는 삼귀의(三歸依))뿐 아니라, 그를 실천하기 위한 사홍선원(四弘誓願)이 깃들어 있다.  살면서 어디양지만 만날 수 있을까기댈 곳 없어비척거리며 걸어갈 때어두운 세상이야기에소심한 가슴까맣게 타들어갈 때눈물 닦아주었던하얀 손수건 같은풍경소리상처로 얼룩졌던 가슴도비척거리던 걸음도미움으로 가득 찼던 눈빛도다독다독 어루만져주며내가 꽃이라 일러준법문에 이끌려 살아온 날들행간으로 이어서시집으로 묶는다.- 목필균-

     

    <목필균의 시세계>

     

    깨달음을 위한 성찰의 풍경소리

     

    누구든 내게 신앙을 물으면 주저함 없이 불교 쪽에 가깝다고 말을 하는 편입니다. 왜냐고 물으면 ‘심즉불心卽佛’이란 말에서 오는 얽매임 없는 편안함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목마른 자에게 물 한 잔 떠주는 마음에도 보시(布施)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 불성(佛性)을 치하하는 탈(脫) 권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절집에 오라고 팔을 붙잡힌 일도 없고, 나름대로 생명을 가진 것들을 긍휼히 여기고 이타행을 실천했는데도 절집에서 사홍서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극락행은 없다는 야박한 말을 들은 일도 없으며, 어디서든 남을 이롭게 한 이에게는 기꺼이 도솔천의 한 자리를 내어줄 것 같은 불교의 거리낌 없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무신론자인 내게 종교란 것은, 선(善)을 향한 하나의 영혼에 각기 다른 옷을 입혀놓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만 선이고 남은 악이라는 독선보다는 절집 한 곳에 칠성각을 세워 산신령을 모셔놓고 경배하게 하는, 우주 같은 마음에 머리를 조아리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내 가슴의 천칭저울이 불교 쪽으로 기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 오직 인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축생과 나무와 꽃과 풀 등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중생으로 끌어안는 무한량의 포용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이것이 나의 불교관이며, 중생을 향하여 언제나 고운 눈빛을 보내는 목필균 시인의 시집 한 구석에 발문이란 이름을 빌어 이 글을 써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밝혀둡니다.시인의 삶과 시가 일치한다면 더 이상 바람직할 수 없지만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고 그 시에 향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목필균 시인의 시를 붓글씨로 필사(筆寫)하듯이 열 번도 더 읽고 난 후에 내린 결론은 목필균 시인의 삶과 문학이 분명히 하나의 영혼이라는 사실입니다.그녀의 삶은 그녀의 시 "만다라를 그리며"에 여실히 농축되어 있습니다.

     

    원圓 안에 나를 그린다둥글게 구부러진 나를다시 둥글게 끌어안은 사람들사랑도 미움도 원 안에 함축되어 있다

     

    바람이 새에 안기고새는 바람을 타고 난다향기 속의 꽃도꽃이 피워내는 향기도천지에 파장을 일으킨다

     

    바람이 물결치며 구름을 만들어 내고생각 속의 사람도둥글게 맴을 돈다

     

    둥글게 원 안에나를 그려 넣는다

     

    알고도 모르는 척마음 상해도 안 그런 척살면서 받은 상처남에게는 보이지 않기

     

    우주 안에 나를 놓아두고나를 향해 들어간다산이, 구름이, 꽃이뒤 따라 온다

    (만다라를 그리며 全文)

     

    그녀를 알고부터 십여 년 동안 내가 지켜본 그녀는 모진 구석이라곤 한 번도 없었던 눈물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녀의 삶에서 가장 경계하려 한 것은, 남의 그림자까지 살피지 못한 자신의 언행言行이 혹여 남의 가슴에 빠지지 않는 옹이를 박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였습니다.한 마디로 말하면 그녀의 삶은 남에 대한 배려와 조바심이었습니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자신이 원 밖으로 삐져나오는 모난 돌이 되지 않으려고 쉼 없는 성찰을 하며,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여과장치에 거르고 걸러 자신의 목젖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은 산이 되고 꽃이 되고 구름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수행이 없는 사람의 얼굴엔 오욕(五慾)이 그대로 드러나고 번뇌가 노출되는데 반하여 성찰(省察)로 살아온 사람은 오욕의 형상을 감출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오욕을 드러나지 않게 하는 마음의 다스림을 평정심(平靜心)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목필균 시인의 수행은 번뇌의 바다에서 해일처럼 이는 파도를 초극하기 위한 평정심을 고양하기 위함이며 그녀가 시를 쓰는 것도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행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세월이 건조해져 갈수록 인성은 더욱 포악해져서 그냥 눈감고 지나칠 일에도 주저 없이 분노에 불을 붙여 송곳니를 드러내는 세상입니다. 따라서 조물주가 인간을 세상에 내려 보낼 때 가슴 깊은 곳에 은밀히 저장해 둔 사(邪)와 욕(慾)의 제어장치인 평정심은 갈수록 퇴화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 평정심이 진화(進化)되어야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이 피는데 세월이 갈수록 사람들은 먹이사슬에서 이기기 위해 마음밭에 잔뜩 비수를 꽂아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이럴 때 진흙밭에 연꽃을 피우게 하는 힘은 불교정신이며, 불성으로 충만한 목필균 시인의 시야 말로 시를 읽은 이들로 하여금 둥근 원 안에 자신을 밀어 넣게 하고 염화의 미소를 지우게 하리라 생각합니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산(雪山)에서의 고행 끝내고 얻은 깨달음의 과정을 농축해 놓은 것을 팔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팔정도(八正道)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수행자가 지녀야 할 삼가함 내지는 근신의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팔정도의 첫째는 정견(正見)으로써 사물을 바르게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말합니다. 저는 이 마음의 눈이 선하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이 극락일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목필균 시인의 눈은 어떤 형상을 지니고 있을까요?그녀의 시 "법흥사 적멸보궁"은 그녀가 어떤 눈빛으로 중생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없는 것이 아니요보인다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짓는 불당적멸보궁(寂滅寶宮)금강대좌 위에 없는 불상이가슴으로 들어와 앉는다

     

    푸른 솔로 피어나는목탁소리산이 깊을수록 오직 한마음이다

    (법흥사 적멸보궁 부분)

     

    목필균 시인의 심안(心眼)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없는 것이 아니요/보인다/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말하고 있습니다.시를 쓰는 시인에게는 공즉시색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즉시색의 눈으로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스스로 형체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필자를 포함한 시를 쓰는 모든 이들에게는 세상을 긍휼히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정견(正見)이야 말로 팔정도의 첫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부처가 없는 법당에 앉아있지만 마음속에는 부처님이 계십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바르게 바라보는 눈이 있을 때 세상은 번뇌의 바다가 아니라 극락이 되며 이런 정견을 가질 때 목탁소리를 푸른 솔이 되게 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음은 그녀의 시에 드러나는 팔정도(八正道)의 세 번째인 정어(正語)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팔정도의 첫 번째인 정견(正見)과 두 번째인 정사유(正思惟)는 사물을 바라보는 바른 눈과, 바른 눈으로 바라본 바른 생각이며 세 번째인 정어는 바른 생각의 표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시를 통하여 말을 뱉기 전에는 반드시 마음의 여과장치에서 거르고 걸러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야 한다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부처님은 모든 화禍의 근원이 혀끝에서 오는 것이라고 설법했습니다. 따라서 말을 하기 전에는 나의 잣대를 거두고 남의 잣대로 나를 재며 눈높이를 남에게 맞추어야 하며 남의 얼굴만 보지 말고 남의 그림자 속까지 놓치지 말고 비추어 본 후에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이 평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시를 보면서 그녀가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을 얼마나 경계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말을 삼가고글을 삼가고생각을 삼가고

     

    복닥거리는 세상넘겨다볼 마음까지빗장 지르고

     

    촛불 하나로어둠을 밀어낸다

    (불심佛心 全文)

     

     

    말로 짓는 구업(口業)을정화하려는데 생각은늘 더 큰 죄업을 짓고 있네

     

    한 송이 꽃도한 편의 시도사랑의 결실도모두 인고(忍苦)의 파도 속에 꽃 피는 것을

     

    흘어졌다 모이고모였다 흩어지는 구름같이공허한 것들이정좌하려는 마음을흔들어댄다

    (불심의 그늘 中에서)

     

    위의 첫 번째 시를 보면 그녀도 부처님처럼 모든 죄업이 혀끝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해탈로 가기 위해 마음에 빗장을 지르고 자신의 혀끝에서 나오려 하는 사악한 말들을 차단하려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두 번째 시에서도 한 송이 꽃도, 한 편의 시도, 사랑의 결실도, 모두 인고(忍苦)의 파도 속에서 꽃이 핀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시에서 ‘인고(忍苦)의 파도’를 정어(正語)를 위한 여과장치로 생각하며 그녀가 말을 표출하기 전에 얼마나 노심초사 하며 살아가는 실감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시에서 마음의 빗장이란 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빗장이란 말은 팔정도의 두 번째인 정사유正(正思惟)를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인은 정사유((正思惟))의 빗장이 풀리면 인간은 입으로 구업을 짓게 될 수밖에 없으므로 깊이 생각한 후에 자신의 심중을 표출해야 하며 그래야 어둠이 밝아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정사유는 언제나 마음속의 바람에 흔들리기 쉬우므로 굳은 심지를 지녔을 때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 해탈로 가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성찰로 점철되어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시는 부처님께 올리는 삼귀의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사홍서원(四弘誓願)입니다. 따라서 그녀의 시들은 그녀가 마음 한켠의 처마에 풍경을 매달고 사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필자는 여느 평론처럼 그녀의 시 여러 편을 골라 친절하게 해석하는 愚를 범하려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독자의 수준을 모독하는 주제 넘는 오지랖이며 그녀의 시에서 배어나는 진솔함의 향기를 속(俗)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그녀의 시에는 고승대덕께서 주장자를 들고 도반이나 대중들에게 불쑥 던지는 선문답 같은 선시가 없습니다. 그녀의 시는 어떤 가식도 없는 관세음의 미소이며 그녀의 삶처럼 무욕의 산물입니다. 그녀는 고찰(古刹)에서 나는 범종의 공명에는 감동받지만 그녀 스스로 지축을 울리는 범종이 되려하지 않습니다.대신 그녀가 되려 하는 것은 절집 처마에 달린 풍경입니다. 따라서 그녀의 시에는 그녀가 풍경이 되려하는 겸양이 담겨있고 팔정도를 실천하기 위한 서원이 담겨있습니다.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신라시대 불교예술의 거장(巨匠) 양지(良志)의 피를 받고 태어나 고해의 바다 곳곳에 관세음보살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내가 만들 관세음에는 목필균 시인의 가식 없는 미소와 선한 눈빛을 담고 싶습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목 시인의 모습을 온전히 반영한 관세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으리라 확신합니다.

     

    필자는 십여 년 전 우이시 낭송회의 뒤풀이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녀의 미소는 전생의 어느 가을날 만난 국화꽃처럼 향기를 피우고 있었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향기는 변함이 없습니다.독자들도 이 시집을 읽으며 어떤 가식도 없는 진솔한 향기에 눈을 뜰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나이가 더 들어 밤하늘의 초승달이 저승의 강을 건너 주는 배로 보일 때쯤이거나, 외로움이 깊어 병이 될 때쯤이면 나도 내 마음의 한 구석에 풍경 하나 걸어놓고 그녀의 시를 반야심경처럼 암송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 시인의 시집 <내가 꽃이라 하네>가 구속하려 하는 것에서 항상 한 발을 빼고 도망준비를 하려하는 나를 그녀의 도반이 되게 할 것입니다.염려되는 것은 시를 읽지 않으려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녀의 시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필자로 하여금 이런 기우를 금세 거두게 하는 것은 그녀의 시를 읽으며 느끼는 향기가 오랜 풍화에서 오는 안온함을 주기 때문입니다.다음 시집에서는 정채봉이 쓴 <초승달과 밤배>처럼 그녀의 시에도 서사성이 들어가 어린 생명들에게 몽상을 주는 동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앞에서 필자가 불교를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까닭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의 무한량을 이야기 했습니다.그녀가 바라보는 중생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음의 화실에 걸어둘 수채화 한 편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서운산 포실한 품 안으로달려가는 때 묻은 목소리석남사 감나무 말없이 반겨준다

     

    주홍빛 토종감 주렁주렁 매단 채가슴앓이의 결실이라고

     

    눈물도 없이 흔들리는 풍경소리가슴에 머물다 스러진다

    (석남사 가는 길 中에서)

     

    그녀는 절창을 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가 날로 차가워져 가는 사바세계에 입김을 불어넣어 온기를 주려함은 주목해야 합니다.사리(舍利)를 만들어 가는 그녀의 시업(詩業)에 합장을 하며 시집 발간을 함께 기뻐하고 싶습니다. 양재일 (시인)
    四弘誓願 (사홍서원)홍(弘)은 광홍(廣弘), 서는 서제(誓制)임). 모든 부처와 보살(菩薩)에게 공통(共通)된 네 가지 서원(誓願) 곧 고통(苦痛) 세계(世界)의 중생(衆生)들은 그 수가 퍽 많다 할지라도 다 건지려는 중생(衆生) 무변 서원도(無邊誓願度) 번뇌(煩惱)가 끝이 없다 하더라도 다 끊으려는 번뇌(煩惱) 무진 서원단(無盡誓願斷) 법문이 한량(限量)없이 많지마는 다 배우려는 법문 무량 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위 없는 불도를 이루어 내려는 불도 무상 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의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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