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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치 웃당골에는 산만한 부처님이 사시고
밤마다 밤일하는 부처님 거기서 나오는 법수가
장장 구십여 리 물 안팎 것들을
먹이고 거두며 동해로 가는데요
때로 매봉산 느릅나무들이
제 슬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몸을 내던지기도 하고 어떤 날 밤은
상원사 문수전이 중과 싸우고 나와
몇날며칠 울다 가기도 하는 그곳 가서
한 사날 죽어라고 물소리 들었습니다
마음에 씻어낼 슬픔이 있어 간 것도 아니요
물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나이도 아니지만
물소리가 왜 그렇게 환장하게
제 몸속으로 들어오던지요
나는 그 물로 밥해 먹고
똥누고 밑 닦고
뒤집어써보기도 하고
풍덩 빠져도 보며 온갖 지랄을 다 했는데
그래 봤자 그 모든 짓이 법수치에게는
물가의 물푸레나무 한 그루나 진배없었겠지요
내가 죽어 이 세상에 없어도
법수치 부처님은 밤마다 그 일을 하겠지만
그래도 그 물 누가 다 보아버리거나
물소리 축날까봐
벙치매미 측은하게 우는 저녁
어둠으로 덮어놓고 돌아왔습니다법수치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 범수치계곡
(그림 : 김길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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