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두현 - 물메기국시(詩)/고두현 2014. 8. 27. 23:44
정독도서관 회화나무
가지 끝에 까치집 하나
삼십년 전에도 그랬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
토담집 까치둥지
어머니는 일하러 가고
집에 남은 아버지 물메기국 끓이셨지
겨우내 몸 말린 메기들 꼬득꼬득 맛 좋지만
밍밍한 껍질이 싫어 오물오물 눈치 보다
그릇 아래 슬그머니 뱉어 놓곤 했는데
잠깐씩 한눈 팔 때 깜쪽같이 없어졌지
야들아 어른 되면 껍질이 더 좋단다
맑은 물에 통무 한 쪽
속 다 비치는 국그릇 헹구며
평생 겉돌다 온 메기 껍질처럼
몸보다 마음 더 불편했을 아버지
숟가락 사이로 먼 바다 소리 왔다 가고
늦은 점심 두레밥상
빈 둥지 올려다보며
껍질 몰래 삼키던 그 모습에
목이 메던 풍경이 있었네
해질녘까지 그 자리 지켜봤을
까치집 때문인가, 정독도서관 앞길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여름 한낮.
(그림 : 박종근 화백)
'시(詩) > 고두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두현 - 집 짓기 (0) 2014.09.24 고두현 - 사랑니 (0) 2014.09.24 고두현 - 해금에 기대어 (0) 2014.06.16 고두현 - 산감나무 (0) 2014.06.16 고두현 - 산 할미꽃 (0) 201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