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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 겨울밤 노래시(詩)/황동규 2014. 8. 21. 13:17
조금이라도 남은 기쁨은 버리지를 못하던
해 지는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잡고 웃던
해서 눈물겹던 사내여 오라.
우리 같이 흰 흙을 핥던 오후에는 배가 안 고프고
언덕에서 내려뵈던 깊은 황혼
캄캄하게 그 황혼 속을 달려가던 사내여 오라.
겨울날 빈터에 몰려오는 바람소리
그 밑에 엎드려 얼음으로 목을 축이고
얼어붙은 못 가에
등을 들판으로 돌리고 서서
못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바라볼 때
몸과 함께 울던 우리의 옷을 보라.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손
그 떨리는 손에는 네 목을 잡고
머리칼 날리며 빙판에 서서
서로 마주 보며 네 목을 잡고
내 들려주리
쓰러지지 않았던 쓰러지지 않았던 사내의 웃음을.
어둡다 말하면 대답소리 들리는
쇳날을 만지면 살이 떨어지는
그런 떨리는 노래는 이제 우리에게.
서로 붙잡은 우리의 어지러움
어지러움 속으로 길은 헐벗고 달려가고
그 길 끝에 열려 있는 술집은 이제 우리에게.
친구여 너는 술집의 문을
닫아도 좋다.
문을 닫아도 바람소리 바람소리
우리 같이 흰 흙을 핥던 오후에는 배가 안 고프고
그때 땀 흘리던 우리의 배를 기억하라.
열린 채 땀 흘리던 우리의 배를 기억하라.
하면 아침이 눈길 위로 올 때까지
우리 서로 얼음 냄새를 풍기며
때로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고 기름 냄새를 맡으며
줄어드는 심지를 바라보며
단추 떨어진 우리 젊은 날의
어둡다 말하며 벗어던진 옷을 말리자.(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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