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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 한밤으로시(詩)/황동규 2014. 8. 24. 07:44
우리 헤어질 땐
서로 가는 곳을 말하지 말자.
너에게는 나를 떠나버릴 힘만을
너에게는 그걸 노래부를 힘만을.
눈이 왔다, 열한시
펑펑 눈이 왔다, 열한시.
창밖에는 상록수들 눈에 덮이고
무엇보다도 희고 아름다운 밤
거기에 내 검은 머리를 들이밀리.
눈이 왔다. 열두시
눈이 왔다, 모든 소리들 입다물었다. 열두시
너의 일생에 이처럼 고요한 헤어짐이 있었나 보라
자물쇠 소리를 내지 말아라
열어두자 이 고요 속에 우리의 헤어짐을.
한시
어디 돌이킬 수 없는 길 가는 청춘을 낭비할 만큼
부유한 자 있으리오
어디 이 청춘의 한 모퉁이를 종종 걸음칠 만큼 가난
한 자 있으리오
조용하다 이모든 것은.
두시 두시
말해보라 무엇인가 되고 싶은 너를.
밤새 오는 눈, 그것을 맞는 길
그리고 등을 잡고 섰는 나
말해보라 무엇인가 새로 되고 싶은 너를.
이 헤어짐이 우리를 저 다른 바깥
저 단단한 떠남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단단함, 마음 끊어 끌어낸......
너에게는 떠나버릴 힘만을
나에게는 노래부를 힘만을.
(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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