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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 나는 지금 물푸레섬으로 간다시(詩)/시(詩) 2014. 8. 4. 23:57
물푸레, 그래 물푸레섬
이름만 굴려 봐도 입가에 푸른 물이 고이는 섬이렷다
연안부두에서 어쩌고 덕적도 어쩌고…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대로 이배저배 갈아타고 반나절,
쉼표처럼 떠 있는 섬 자락에 닿으면
초록물감 한 됫박씩 뒤집어쓴 물푸레나무들이 바람 탄 내 손 잡아주겠지
산책하듯 느리게 섬 한 바퀴 돌다보면 이름도 얻지 못한
몽돌 바닷가 어디쯤 한 여자가 살고 있을 거야
서랍 속 깊이 묻혀 혼자 낡아가는 첫사랑 편지 같은 여자
세상과는 담 쌓고 남정네와도 담 쌓고
그래, 섬처럼 홀로 닫고 살아왔으니 꼭 품어 안으면 물푸레 수액처럼
축축한 슬픔이 단번에 내 가슴으로 번져 오겠지
새들의 지도에나 올라있을 듯한 섬, 물푸레 그 먼 고도(孤島)에 가서
물푸레나무 달인 물로 시나 쓰며 며칠 뒹굴다가
물푸레 그늘 같은 여자에게 코가 꿰었으면 좋겠네
물푸레 코뚜레에 동그랗게 갇혀 오도 가도 못했으면 좋겠어
이배저배 갈아타며 나돌아 다니지 않고
그 여자가 끄는 대로 이러구러 끌려 다니다
나도 물푸레나무로나 늙었으면 좋겠네
제 발치의 성긴 그늘이나 깁는 바보나무가 되었으면 좋겠어야
지금, 나 물푸레섬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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