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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시(詩)/시(詩) 2014. 8. 4. 23:34
소슬바람 속 후박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낡은 고무신 그림자 끌며 창가를 기웃거린다
어쩌면 내 전생이었을지도 모를,
저 나그네에게 술 한잔 권하고 싶다
해질 녘 빈손으로 겨울마차 기다리는 마음도
따스한 술국에 몸을 데우고 싶을 것이다
그늘 아래 쉬어갈 사람의 안부도 궁금할 것이다
천장 한구석 빗물 자국처럼 남아 있는
기억 속으로 나무 그림자가 걸어 들어온다
아이 얼굴보다 큰 잎으로 초록세례 베풀고
허방 짚던 내 손을 맨 먼저 잡아 주었던
후박나무, 그 넉넉한 이름의 상징만으로도
내 삶의 든든한 배후가 돼 주었지
나는 저 후박한 나무의 속을 파먹으며 크고
늙은 어메는 서걱서걱 바람든 뼈를 끌고 있다
채마밭 흙먼지에 마른 풀잎 쓸리는 저녁
후박나무는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생각다가
빈 가지에 슬며시 별 하나를 내건다
세상의 창, 모든 불빛이 잔잔해진다(그림 : 이동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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