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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 도시의 불빛시(詩)/황인숙 2014. 7. 25. 10:49
좀더 밤이 오길 기다리자꾸나.
내 방에서처럼 저 집들도
분명 전등을 켜고 있을 터인데
불빛들이 내게 닿기에는
아직 충분히 어둡지 않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꾸나. 샛별은
하늘의 경사를 오르며 맑아진다.
집들의 윤곽이 가라앉고
말갛게 창문이 떠오른다.
밤을 보낼 치장을 마친
집들이 떠오른다.
언젠가 한 친구가 외쳤었지.
"저 불빛들 좀 봐!
알알이 슬픔이야!"
지금 저 건너편에서 어떤 이도
이쪽을 건너보며 똑같은 탄식을 하고 있을지도 ---
슬프든 노엽든 따뜻한 핏톨처럼
집집의 불빛들이
밤의 언덕, 골짜기에
고요히 웅얼거리며 맥박 친다.(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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