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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 바람이 가끔 그 집을 들여다보네시(詩)/시(詩) 2014. 7. 17. 10:20
싸리 울타리 안에 감나무 한 그루 서 있다수백 개 알전구 켜들고 집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비루먹은 누렁개 한 마리 잡풀 무성한 마당으로 들어선다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옆구리에 패인 갈비자국이 꿈틀거린다
등뼈가 휘도록 콧등을 땅에 붙이고 무언가 냄새를 찾는다
달맞이꽃과 망초 숲에서 놀던 가시멧노랑나비가 서둘러 자리를 뜬다
황구 녀석은 구석구석 푸새더미 뒤지더니 신발 한 짝을 물고 나온다
실밥 터진 운동화를 혼자 밀고 당기고 굴리다가 그도 싱겁던지 대청으로 훌쩍 뛰어오른다안방 건너방 맴돌며 부서진 서랍장, 베개, 아기나팔, 거울조각… 버려진 시간을 끌어낸다
잡동사니 세간들을 마루 위에 쌓아놓고 킁킁대다가 온몸으로 문지르다가
가늘고 긴 목을 뽑아 목청껏 짖기 시작한다
여름내 홍시 속에 쟁였던 햇살이 순금으로 쏟아져 내린다
바람이 가끔 그 집을 들여다본다
사람을 벗은 빈집에서 뼈 부딪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그림 : 이상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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