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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 보리밭의 잠시(詩)/송진권 2014. 4. 23. 23:19
너무 여물어 빨빨 쇤 보리밭 말고
아직 연한 보리밭쯤이면 될랑가
그것도 평지에 펀펀히 드러누운 보리밭 말고
산날망 넘어오는 뙤똥한 보리밭쯤이면 어떨랑가
막 비 온 뒤끝이라 파릇파릇 웃자라서
대공을 잘근잘근 씹으면 단물이 배어나는
배동 오른 보리밭쯤이면 될랑가
아지랑이 아물아물한 데서
하늘아이들이 시시덕대며 내려와 소꿉놀이하며
풀꽃 따다 밥 짓고 반찬 하고
보리피리 불다 돌아간 뒤
그나마 정든 구천도 어두워지고
살도 뼈도 다 저 갈 데로 가버리면
파릇한 혼백 하나
착하고 뚱뚱한 구름 속으로 둥둥 날아가
왼어깨에는 해를 앉히고
오른어깨에는 달을 얹고
머리카락엔 솜솜 별을 뜯어붙이고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할랑가
할 수나 있을랑가(그림 : 박준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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