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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상호 - 그 노인이 지은 집
    시(詩)/길상호 2014. 4. 19. 12:01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


    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는 이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 지붕을 떠올렸다가
    늙으면 찾아갈 길 꿈길뿐인데 밤마다 그 길 젖을 것 같아
    새가 뜨지 않도록 촘촘히 기왓장을 올렸다
    그렇게 지붕이 완성되자 그 집, 집다운 모습이 드러나고
    그는 이제 사람과 바람의 출입구마다 준비해둔 문을 달았다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
    하얀 창호지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고 있는,
    불 켜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
    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못 없이 흙과 나무, 세월이 맞물려진 집이었기에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 아귀를 맞춰나갔다
    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들었다
    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 다시 살아나
    하얗게 바랜 노인 그 안으로 편안히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림 : 박락선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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