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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 그녀의 실 감기시(詩)/길상호 2014. 3. 30. 10:43
어두운 방에서 그녀 실을 감는다
실타래 끝을 마른 발로 버티고
이편에서 건너편 세월을 오가며
기억을 정리중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손에
하얀 실뭉치는 배가 부르다
그러나 가끔 손가락에 힘을 주어도
엉키어 따라오지 않는 기억도 있다
그때마다 실밥처럼 끊겨 나간 세월이
얼굴에 깊은 주름으로 남는다
주름이 얼굴에 수를 놓는다
한 올 한 올 가닥을 더듬어 보아도
풀리지 않는 그리움 같은 것,
그 뭉친 자리를 삭은 이로 끊으며
그녀 잠시 허리를 편다 그리고
끊은 자리 매듭으로 이으면서
삶의 상처 하나씩 딱지로 아문다
그녀의 살에 새롭게 돋아난 별들
어느새 창문으로 노을이 번지고
그녀, 생의 내면을 가로지르듯
실뭉치에 빛나는 바늘 하나 꽂는다(그림 : 이희문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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