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상호 - 씨앗이 되기까지시(詩)/길상호 2014. 4. 19. 12:07
겨울은 그렇게 견디는 거야대청마루 낡은 거미줄과 함께 오래 매달려 있는 옥수수처럼
하고 싶은 말 있어도 입 꽉 다물고 있는 거야
장독대 단지의 볍씨처럼 지독한 어둠 속에 갇혀 보기도 하는 거야
몸속에 생명 하나 품기 위해선 모든 껍질을 바짝 말려야 하지
네 몸 속에 지니고 있던 것들 하나씩 허공으로 날려 보내면
한층 너의 눈은 맑아질 거야
조용히 눈감고 떠올려 보렴
지난 봄 어둠 열어 주던 빗소리부터 가을 머리 위에서 춤추던 잠자리까지
그 날개마다 빛나던 햇볕까지 말이야
눈물로 씻어 낸 눈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모든 걸 볼 수 있었겠어
설마 지금도 들녘에 남겨 두고 온 뿌리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뿌리는 어둠 헤매던 꿈 모두 길어 올리고
땅 속에 영원히 잠자리를 잡은 거야
그 휴식은 이제 흔들어 깨울 필요가 없지
모든 상념 버리고 기다리는 거야그래, 그렇게 씨앗이 되는 거지
조금만 참으면, 조금만 더 참으면…(그림 : 김희숙 화백)
'시(詩) > 길상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상호 - 지나가는 말 (0) 2014.05.21 길상호 - 돌탑을 받치는 것 (0) 2014.05.21 길상호 - 그 노인이 지은 집 (0) 2014.04.19 길상호 - 감자의 몸 (0) 2014.03.30 길상호 -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0) 2014.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