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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
그가 열 살이 못 되어 젊디젊은 그 아버지는 가슴을 앓아 죽고
그는 아름다운 젊은 홀어머니와 둘이 동지섣달에도 눈이 오지 않는
따뜻한 이 낡은 항구의 크나큰 기와집에서 그늘진 풀같이 살아왔습니다.
어느 해 유월이 저물게 실비 오는 무더운 밤에 처음으로 그를 안 나는
여러 아름다운 것에 그를 견주어 보았습니다.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산새에도 해오라비에도 또 진달래에도 그리고 산호에도……
그러나 나는 어리석어서 아름다움이 닮은 것을 골라낼 수 없었습니다.
총명한 내 친구 하나가 그를 비겨서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제는 나도 기뻐서 그를 비겨 수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나의 수선이 시들어갑니다.
그는 스물을 넘지 못하고 또 가슴의 병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만하고,
나의 노란 슬픔이 더 떠오르지 않게
나는 당신의 보내주신 맑고 고운 수선화의 폭을 치워놓아야 하겠습니다.
(그림 : 최정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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