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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 가게시(詩)/박남준 2014. 2. 9. 12:45
하동에서 구례 사이 어진 강물 휘도는 길
비바람 눈보라 치면 공치는 날이다
집도 없고 포장마차도 없는 간이 휴게실이 있지
고물 트럭을 개조해 만든
재첩 국수와 라면, 맥주와 소주와
음료수와 달걀과 커피 등등
전망 좋고 목 괜찮아 오가는 사람들 주머니가
표 나지 않고 기분 좋게 가벼워지는 동안
눈덩이 같던 빚도 갚고 그럭저럭 풀칠도 하는데
빌어먹을
그 아저씨의 그 여자는 암에 덜컥 발목을 잡혔다
소원이 있었댄다 꿈 말이지 웃지 말아요 정말이라고요
반짝이는 옷을 입고 밤무대에 서는 가수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깊이 모자를 눌러쓴 그 여자는
아저씨를 졸라 간이 휴게소 아래
얼기설기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선풍기도 난로도 아니 전등도 하나 없는
간판도 없는 두어 평 비닐하우스 무허가 옷 가게
어려서나 더 젊어서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반짝이는 반짝이 옷
너울너울 인형 같은 공주 옷을 파는 옷 가게
그녀에게서 사온 옷을 안고 잠을 청하면
푸른 섬진강 물이 은빛 모래톱 찰랑찰랑 간질이는 소리
동화 속 공주가 나타나는 꿈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구례에서 하동 사이,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짝이는 옷 가게
그녀가 웃고 있다
(그림 : 임은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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