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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어느 대나무의 고백시(詩)/복효근 2014. 2. 2. 09:48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 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지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죽비
하다 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 마저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 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 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그림 : 손만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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