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정록 - 제비꽃 여인숙
    시(詩)/이정록 2014. 1. 15. 01:09

     

     

    요구르트 빈 병에 작은 풀꽃을 심으려고
    밭두둑에 나가 제비꽃 옆에 앉았다
    나잇살이나 먹었는지 꽃대도 제법이고, 뿌리도 여러 가닥이다
    그런데 아니, 뿌리 사이에 굼벵이 한 마리 모로 누워 있다
    아기부처님처럼 주무시고 있다

    한 송이는 하늘 쪽으로
    한 송이는 포대기 속 잠결 아래로
    그리고 또 한 송이는 곁에 있는 감나무 가지를 향하고 있다
    저 감나무에 올라 울음보를 터트릴 거라고 입술을 떠는 꽃잎들
    어떻게 본래의 이부자리대로 제비꽃을 심어놓을 것인가
    요구르트 병 허리를 매만지다가 , 안에 고여 있는 젖 몇 방울을 본다
    몸통만 남이 있는 불상처럼, 지가 뭐라고 젖이 돌았는가

    울음보만 바라보며 몇 년을 기다려온 굼벵이
    그 아름다운 허리를 오래 내려다본다
    할 말 아끼다가 멍이 든 제비꽃에게도 합장을 한다
    문득 내 손가락의 실 반지 그 해묵은 뿌리에 땀이 찬다
    제비꽃 아래의 고운 숨결에 동침하고 싶어
    내 마음 감나무 새순처럼 윤이 난다

    흙 속에 살되 흙 한 톨 묻히지 않고, 잘 주무시고 계신다

    이미 흙을 지나버린 차돌 하나, 살짝 비껴간 뿌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먼 훗날의 제 울움주머니만 굽어보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여러해살이라고, 그리하여
    차돌 같은 사리로 마음 빛나는 것이라고

    (그림 : 노숙자 화백)

     

    '시(詩) > 이정록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정록 - 물꼬  (0) 2014.05.30
    이정록 - 바람 아래  (0) 2014.05.29
    이정록 - 뻘에 와서 소주를  (0) 2014.05.26
    이정록 - 내 품에, 그대 눈물을  (0) 2014.02.11
    이정록 - 국밥 한 그릇  (0) 2013.12.29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