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우 - 도화 아래 잠들다시(詩)/김선우 2014. 1. 7. 09:23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그림 : 강정희 화백)
'시(詩) > 김선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선우 - 낙화, 첫사랑 (0) 2014.02.03 김선우 - 나는 아무래도 무보다 무우가 (0) 2014.02.03 김선우 - 대천바다 물 밀리듯 큰물이야 거꾸로 타는 은행나무야 (0) 2014.02.03 김선우 - 나생이 (0) 2014.02.03 김선우 -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0) 201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