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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큼은 풀을 잡아보겠다고 풀을 몬다
고추밭 파밭 가장자리로,
도라지밭 녹차밭 가장자리로 풀을 몬다
호미자루든 괭이자루든 낫자루든
잡히는 대로 들고 몬다
살살 살살살살 몰고
싹싹 싹싹싹싹 몬다
팔 다리 어깨 허리 무릎,
온몸이 쑤시게 틈날 때마다 몬다
봄부터 이짝저짝 몰리던 풀이
여름이 되면서, 되레 나를 몬다
풀을 잡기는커녕 되레 풀한테 몰린 나는
고추밭 파밭 도라지밭 녹차밭 뒷마당까지도
풀에게 깡그리 내주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낮잠이나 몬다
(그림 : 구병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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