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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탁번 - 폭설(暴雪)
    시(詩)/오탁번 2013. 12. 26. 13:34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ㅡ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렀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ㅡ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ㅡ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겄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그림 : 최홍열 화백)

     

     

                                                                                                                                             

    (낭송 : 이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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