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탁번 - 벙어리 장갑시(詩)/오탁번 2013. 12. 26. 13:44
여름내 어깨순 집어준 목화에서
마디마디 목화꽃이 피어나면
달콤한 목화다래 몰래 따서 먹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ㅡ겨울에 손 꽁꽁 얼어도 좋으니?
서리 내리는 가을이 성큼 오면
다래가 터지며 목화송이가 열리고
목화송이 따다가 씨아에 넣어 앗으면
하얀 목화솜이 소복소복 쌓인다
솜 활끈 튕기면 피어나는 솜으로
고치를 빚어 물레로 실을 잣는다
뱅그르르 도는 물렛살을 만지려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ㅡ손 다쳐서 아야 해도 좋으니?
까치설날 아침에 잣눈이 내리면
우스꽝스런 눈사람 만들어 세우고
까치설빔 다 적시며 눈싸움한다
동무들은 시린 손을 호호 불지만
내 손은 눈곱만큼도 안 시리다
누나가 뜨개질한 벙어리장갑에서
어머니의 꾸중과 누나의 눈흘김이
하얀 목화송이로 여태 피어나고
실 잣는 물레도 이냥 돌아가니까(그림 : 정우경 화백)
'시(詩) > 오탁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탁번 - 그냥커피 (0) 2013.12.26 오탁번 - 춘일(春日) (0) 2013.12.26 오탁번 - 두레반 (0) 2013.12.26 오탁번 - 저녁연기 같은 것 (0) 2013.12.26 오탁번 - 고욤나무 (0) 201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