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철 - 선운사 가는 길시(詩)/최영철 2013. 12. 25. 12:02
고창에서 선운사까지 두 명 타고 온 버스
두 남녀는 멀찍이 떨어져 창밖만 보았다
버스가 산문(山門)에 당도하자
앳된 소녀는 절을 등지고
후줄근한 사내는 절을 향해 걸어갔다
뒤를 한번 돌아볼까 하다가
그 마음이 동해 눈이 딱 마주칠 것만 같아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갔다
동백꽃 피는 봄도 상사화 피는 가을도 아닌
오다 말다 잠시 하늘이 빤한 초여름 장마
대웅전 안이 조금 들여다보이는 마루 끝에 앉았다
동해의 넘실대는 파도에 떠밀려온 사내는
동백꽃도 상사화도 없는 절집 너른 방을
혼자 지키고 있는 홀아비 부처를 바라보았다
꽃 떨어지고 잎 무성한 동백과
꽃 피기 전 잎 잠깐 무성한 상사화 보며
누구나 한번은 저렇게 푸른 날이 있는 것이라고
머지않아 잎 버리고 꽃도 버려야 할 날도 있을 것이라고길 반대편으로 가버린 앳된 소녀를 생각했다
(그림 : 이삼영 화백)
'시(詩) > 최영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영철 - 통도사 땡감 하나 (0) 2013.12.25 최영철 - 어머니의 연잎 (0) 2013.12.25 최영철 - 노을 (0) 2013.12.25 최영철 - 본전 생각 (0) 2013.12.25 최영철 - 어느 날의 횡재 (0) 201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