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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 부석사(浮石寺)시(詩)/김명인 2013. 12. 24. 11:17
언 바다에 뜬 부표(浮漂)들이 꺼진 분화구
주변을 헤매는 화산석 같다
다만 절간처럼 고요한 면벽, 창 너머로도
걸어서 하늘에 이르는 길 보이지 않을 뿐
한두 점 구름에도 박히며 새들 까마득하게 난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말 한마디 못 했음을
불일듯 노을 지펴오르는 황혼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끼니때마다 한번쯤 내다보는
발전소 높은 굴뚝과 저기 고압선
눈 쌓인 이면 도로 철탑 언저리엔 오래 전부터
바퀴 주저앉힌 군용 트럭 한 대
갈 길 다 달리고도 떠나야 할
욕망이 남는 사람은 애처롭다
문을 열고 나서면
길이야 여기서도 어디로든 뻗어 있겠지만
어느 쪽을 엿보아도 반원의 길
끝없이 휘어져 돌아설 뿐 갈 곳이 없다
다만 내 떠나지 않은 길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기차가 오고 간다, 시베리아 저쪽
지구의 끝에 맞닿아 있다는 바람의 통로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러 떠났던 그 밤에도
단양에서 영주까지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십 년 저쪽에서, 나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렸던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한 길밖에 없었던가
날 수 없는 돌, 죄 어긋났던
사랑 뒤미처 깨닫는다 해도
부석사로 가는 길은 이미 끊겨 있다
(그림 : 김대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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