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
천지간에 어둠을 깔아놓는 일
그걸 거두려고 이튿날의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
밤은 밤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꽉 잠가둔다
여름밤은 너무 짧아 수평선 채 잠그지 못해
두 사내가 빠져나와 한밤의 모래톱에 마주 앉았다
이봐,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어
부려놓으면 바다가 다 메워질 거야
그럴 테지, 사방을 빼곡히 채운 이 어둠 좀 봐
망연해서 도무지 실마릴 몰라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겹쳐
밤새도록 철썩거리며 파도가 오고
그래서 여름밤 더욱 짧다
어느새 아침 해가 솟아
두 사람을 해안선 이쪽저쪽으로 갈라놓는다
그 경계인 듯 파도가다시 하루를 구기며 허옇게 부서진다
(그림 : 이향지 화백)
'시(詩) > 김명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명인 - 안정사(安靜寺) (0) 2013.12.24 김명인 - 부석사(浮石寺) (0) 2013.12.24 김명인 - 이별 노래 (0) 2013.12.24 김명인 - 따뜻한 적막 (0) 2013.12.24 김명인 - 저 능소화 (0) 201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