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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낙원(樂園)은 가시덤불에서시(詩)/한용운 2013. 12. 16. 16:51
죽은 줄 알았던 매화나무 가지에 구슬 같은 꽃망울을 맺혀주는 쇠잔한 눈 위에 가만히 오는 봄 기운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밖에 다른 하늘에서 오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모든 꽃의 죽음을 가지고 다니는 쇠잔한 눈이 주는 줄을 아십니까.
구름은 가늘고 시냇물은 옅고 가을산은 비었는데 파리한 바위 사이에 실컷 붉은 단풍은 곱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풍은 노래도 부르고 울음도 웁니다. 그러한 '자연(自然)의 인생(人生)'은 가을 바람의 꿈을 따라 사라지고기억(記憶)에만 남아 있는 지난 여름의 무르녹은 녹음(綠陰)이 주는 줄을 아십니까.
일경초(一莖草)가 장육금신(丈六金身)이 되고 장육금신(丈六金身)이 일경초(一莖草)가 됩니다.
천지(天地)는 한 보금자리요 만유(萬有)는 같은 소조(小鳥)입니다.
나는 자연(自然)의 거울에 인생(人生)을 비춰 보았습니다.
고통(苦痛)의 가시덤불 뒤에 환희(歡喜)의 낙원(樂園)을 건설(建設)하기 위하여 님을 떠난 나는 아아 행복(幸福)입니다.
(그림 : 박항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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