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향해 걸어가기 위해 제주에 왔네
관덕정에서부터 걸었네
명월지나 애월바다 마라도며 다랑쉬오름
그대를 만나 서로의 눈동자에 눈부처를 새기고
함께 길을 가려 햇볕과 비바람의 날 걷고 걸었네
바람과 돌, 오름의 전설이 숨 쉬는 땅
내 눈 모자라 다 보고 또 못 보네
유년의 기억을 부르는 바람개비의 풍차가
가던 발길을 설레게 하며 멈추게도 했네
개발로 파헤쳐진 아름다운 곶자왈도 보았네
유채꽃 흔들리는 노란 꽃 그늘 아래 쓰러지던
할머니와 어머니와 어린 누이의 넋들이 손짓하기도 했네
붉은 철쭉꽃 아래 으깨어진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내 형제들의 비명이 들려오기도 했네
쓰러진 것들이 일어나 함께 걷는 나 여기 제주에 왔네
그대를 향해 걸어간다는 것
바로 내 안의 생명과 평화를 얻기 위한 일
내 안으로 걸어가네
바람과 돌들의 말에 귀 기울이네 내 귀는 자꾸 가물거리는데
제주의 모든 바람과 돌들이
생명과 평화의 말로 노래 부를 때까지
걷고 또 걷겠네 그대에게 가는 길 멈추지 않겠네
(그림 : 설종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