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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오랑캐꽃시(詩)/신경림 2013. 12. 14. 00:27
간밤에 언덕 위 빈집 문 여닫는 소리 들리고
밤새도록 해수 앓는 소리 들리고
철거덕철거덕 돗자리 짜는 소리 들리더란다
십년 전 농사 버리고 떠난 영감 왔나부다
그래서 날 새면 올라가 보리라고
동갑네들 동트기만 기다렸더니
닭이 울기도 전에 부고 전화부터 왔다
다리 저는 그 영감 간밤에 세상 떴다고못살아 고향 등지고 떠난 사람은
저승길도 곧장 가기가 서러워
아픈 다리 끌고 절고 고향집 들러 가는가
빈집에서 혼자 밤샘 얼마나 서글펐을까
들여다보는 동갑네들 짓무른 눈에
사랑방 댓돌 옆으로 빈 오줌독
엎어진 검정고무신 한 짝을 비집고
봄이라고 그래도 오랑캐꽃이 웃고 있다(그림 : 김인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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