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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을 싸늘한 바위를 안고도
뜨거운 가슴을 어찌하리야
어둠에 창백한 꽃송이마다
깨물어 피 터진 입을 맞추어
마지막 한 방울 피마저 불어놓고
해 돋는 아침에 죽어 가리야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모든 것 다 잃고라도
흰 뼈가 되는 먼 훗날까지
그 뼈가 부활하여 다시 죽을 날까지
거룩한 일월의 눈부신 모습
임의 손길 앞에 나는 울어라
마음 가난하거니 임을 위해서
내 무슨 자랑과 선물을 지니랴
의로운 사람들이 피 흘린 곳에
솟아오른 대나무로 만든 피리뿐
흐느끼는 이 피리의 아픈 가락이
구천에 사무침을 임은 듣는가
미워하는 것 미워하는 모든 것 다 잊고라도
붉은 마음이 숯이 되는 날까지
그 숯이 되살아 다시 재 될 때까지
못 잊힐 모습을 어이하리야
거룩한 이름 부르며 나는 울어라
(그림 : 신동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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