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훈 - 꿈 이야기시(詩)/조지훈 2013. 11. 19. 21:15
문(門)을 열고 들어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마을이 온통 해바라기 꽃밭이었다.
그 훤출한 줄기마다 맷방석만한 꽃숭어리가 돌고
해바라기 숲 속에선 갑자기
수천 마리의 낮닭이 깃을 치며 울었다.
파아란 바다가 보이는 산 모롱잇길로
꽃 상여가 하나 조용히 흔들리며 가고 있었다.
바다 위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오색(五色) 비단으로 돛폭을 달고
뱃머리에는 큰 북이 달려 있었다.
수염 흰 노인이 한 분 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불었다.
꽃상여는 작은 배에 실렸다.
그 배가 떠나자 바다 위에는 갑자기 어둠이 오고
별빛만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그림 : 황제성 화백)
'시(詩) > 조지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지훈 - 여운 (餘韻) (0) 2013.11.19 조지훈 - 맹세 (0) 2013.11.19 조지훈 -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 (0) 2013.11.19 조지훈 - 고 사 (0) 2013.11.19 조지훈 - 빛을 찾아가는 길 (0) 201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