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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훈 - 고풍의상(古風衣裳)
    시(詩)/조지훈 2013. 11. 19. 20:54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杜鵑)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힌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胡蝶)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그림 : 박연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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