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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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 주법 (酒法)시(詩)/이화은 2014. 9. 16. 00:45
반의반도 안 자란 애가 반 되짜리 노란 양은 주전자 들고 아버지 술심부름하다 배운 주법 한모금 또 한 모금 주전자 귀 쪽쪽 빨며 타달타달 신작로 길 걸어오다 보면 취했던가? 반만 남은 주전자 들고도 아버지 꾸지람이 반밖에 안 무서웠네 그때 배운 주법으로 맨 정신으론 오르지 못할 고개 술힘으로 넘어왔던가 가끔은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깊은 강 취한 척 얕게도 건넜던가 얕은 강 너무 깊어 허우적였던가 어느 신작로에 나를 다 흘렸는지 이제 나 반밖에 안 남았네 원래 반 되짜리 그릇 반의반도 안 남았네 아버지 팽개친 막걸리 자죽 청천 하늘에 흰 구름 몇 점 엎질러졌네 (그림 : 한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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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 사람의 노래시(詩)/이화은 2014. 9. 16. 00:41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함을 용서하소서 그 영혼만을 사랑하려 하나 가끔은 그를 안고 싶어함을 용서하소서 부질없이 깊숙이 묻어버린 기억을 밤 새워 도로 캐어냄을 또한 용서하소서 허다한 날 혼자 앓는 지병이 힘겨워 가끔은 그를 잊은 척함을 용서하소서 아니 정말로 잊기 위해 가망없는 노력을 더러는 함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나를 위해서는 한 발자국도 그의 곁에 갈 수 없고 그를 위해서는 백리라도 뒤로 물러 설 수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나이다 (그림 : 남택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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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 청천 하늘에 잔별 뜨고시(詩)/이화은 2014. 8. 24. 08:02
머구닢 쌈싸서 보랑가지 터지게 이른 지늑밥 묵고 멀건 보리숭늉에 입 힝구고 겅구들, 평상우에 성냥개비 맨치로 간조로미 누부믄 자부러븐 눈꺼풀 속으로 버선코 거튼 초저늑 별들 조르르 띠 나오고 성질머리 꼬부장한 낫달 하나 야불떼기에 박고 여름 밤하늘은 맥지로 지 혼차서 욱신거렀지러 누집 알라를 또 늑대가 물어갔다꼬 소문은 노상 짐승거치 무서벘지만도 그캐싸도 그때는 참말로 하늘이 살갑고 가찹았데이 해따깨빈기라 홋이불 거치 밤 쌔도록 덮고 자도 해 뜨마 고마 청천 하늘인기라 광표 다왕 통 속 두근거리는 시절 불티로 다 날라가뿌고 굳은 살 백인 늙은 하늘이 내 심사 긁어대싸도 묵은 된장 속 냄시 나는 세월 잘 히시보나 거 그때 그 잔별 한 소구리 있을동 모른데이 우리네 가심에 수심인가 꿈인가 돌개꽃 거치 눈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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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 아름다운 도반시(詩)/이화은 2014. 2. 24. 23:27
눈 내린 산길 혼자 걷다 보니 앞서 간 짐승의 발자국도 반가워 그 발자국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 발자국 받아 안으려 어젯밤 이 산 속엔 저 혼자 눈이 내리고 외롭게 걸어간 길 화선지에 핀 붓꽃만 같습니다 까닭없이 마음 울컥해 그 꽃 발자국 꺾어가고 싶습니다 짐승 발자국 몇 떨기 가슴에 품는다고 내가 사람이 아니되겠습니까 내 갈 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내 갈 데까지 데려다 주고 그 발자국 흔적조차 없습니다 모든 것 주기만 하고 내 곁을 소리없이 떠나가버린 어떤 사랑 같아 나 오늘 이 산 속에 주저앉아 숲처럼 소리 죽여 울고 싶습니다 (그림 : 김지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