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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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 나는 왜 예까지 와서시(詩)/이태수 2015. 7. 29. 11:32
오다가 보니 낯선 바닷가 솔숲입니다 갯바위에 부딪치는 포말을 내려다보는 해송의 침엽들도, 내 마음도 바다 빛깔입니다 아득한 수평선 위로 날아가는 괭이갈매기 떼, 마음은 자꾸만 날개를 달지만 몸은 솔숲 아래 마냥 그대로 묶여 있습니다 일정한 박자로 솔밭 앞까지 들이치는 파도는 이 뭍의 사람들이 그리워서 그런 걸까요 왔다가 되돌아가면서도 끝없이 밀려옵니다 나는 왜 예까지 와서 괭이갈매기들 따라 날아가고 싶은 걸까요 돌아가야 할 길마저 지우면서 마음만 따로 수평선 저 멀리 가고 있습니다 날 저물어 어둠살 그러안고 앉아 있으면 수평선 위로 돋아 오른 손톱달, 이마 푸른 저 적막, 눈 감아보면 이 세상일은 죄다 갯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포말입니다 오래된 해송 침엽 같은 내 마음 무늬들도 파도에 실려 밀려왔다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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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 마음의 집 한 채시(詩)/이태수 2015. 5. 6. 11:45
집 한 채를 짓는다. 한밤 내 밀려오는 잠을 천장으로 떠밀며 마음의 야트막한 언덕, 고즈넉한 숲 속에 나지막한 토담집 하나 빚어 앉힌다. 이따금 무거운 마음 풀어 내리던 청솔 푸른 그늘. 언제나 그늘 드리워 주던 그 나무들로 기둥도 서까래도 만들어 둥근 지붕의 집을 세운다. 달빛과 별빛, 서늘한 바람 몇 가닥 엮어 새소리 풀벌레 소리도 섞어 벽과 천장, 방바닥을 만든다. 마음의 야트막한 언덕, 고즈넉한 숲 속에 나지막이 앉아 있는 토담집 하나.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깨어 있을 마음의 집 한 채 가만가만 끌어 앉는다. (그림 : 박락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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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 나의 슬픔에게시(詩)/이태수 2015. 2. 1. 19:47
나의 슬픔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 불을 켜서 오래 꺼지지 않도록 유리벽 안에 아슬하게 매달아 주고 싶다. 나의 슬픔은 언제나 늪에서 허우적이는 한 마리 벌레이기 때문에, 캄캄한 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거나 아득하게 흔들리는 희망이기 때문에. 빈 가슴으로 떠돌며 부질없이 주먹도 쥐어 보지만 손끝에 흐트러지는 바람 소리, 바람 소리로 흐르는 오늘도 돌아서서 오는 길엔 그토록 섭섭하던 달빛, 별빛. 띄엄띄엄 밤하늘 아래 고개 조아리는 나의 슬픔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 불을 켜서 희미한 기억 속의 창을 열며 하나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다. 제 몸마저 남김없이 태우는 그 불빛으로 나는 나의 슬픔에게 환한 꿈을 끼얹어 주고 싶다. (그림 : 박항율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