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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어디 방앗간에서 만들었다는 들기름 한 병
한동안 아까워 아껴 먹다 언제부터 잊고 지냈나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막히지 않고 흘러가는 기름진 생도 아닌데
진득하게 고이는 기름이
기한이 있으면 또 어때?
김치라도 볶아서 두부에 올려 먹어야지
그렇게 한참이 지난 기한을 연명했고
결국 비워버린 들기름병을 버리지 않았어
버너 앞에 빈 병을 고이 놔두고
찌개라도 끓일 때 한 번씩 바라봤지
어느 날은 깨끗이 씻어 다시 빈 병만 올려놨지
들기름병에게 안부를 묻는다
퍽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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