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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현 - 내 가난한 몸 들일 초가삼간 지어볼라네시(詩)/시(詩) 2023. 4. 24. 19:50
산돌 몇 개 지고 와 주초로 놓고
한세상 고달파 나이테 촘촘한 놈 골라
튼실한 뿌리 쪽에 그랭이 떠서 기둥으로 세워두고
새들의 부리로 쪼은 화통가지에
뒤틀렸어도 우듬지에 새집 몇 개쯤 세주고 살아온
허리 굵은 대들보는 생긴 대로 치목해 앉혀놓겠네
권세니 명예는 없으니
대충 휘어진 서까래는 나이 따위는 잊고
돌려가며 쓰다 보면
초승달 놀만하거나
박 몇 개 달릴 지붕이 될 걸세
건너 산비알 황토 몇 지게에 볏짚 섞어 벽을 바르고
처마 끝 햇살이 마룻장을 덮으면
흙 묻은 손으로 다관(茶罐)에 차 한잔하세
내 가난하니
국화정이나 철물 문고리 대신
가죽 손잡이 달아 놓고
아궁이 가득 장작 넣어 놓을 터이니
그대 기별 없이 찾아와
다래주(酒) 한 동이 다 드시고 가시게
이제 빗소리 듣고 싶어 양철지붕을 덮을까
처마 낙수가 좋으면 기와를 올려도 좋으나
내 가난하니
초가지붕 얹어 두면
산새 몇 마리 찾을 터이니
두고두고
귀 호강 누려 볼라네
(그림 : 류건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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