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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서운 건 관계 때문이고
관계가 힘든 건 마음 때문이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한 구절 한 구절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내게로 왔다
발자취를 생각한 건
그때부터였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은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붉은 문장을 이해한 건
혹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때였다
사랑과 인식의 출발에 눈을 뜬 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문장을
지운 뒤였다
한 사람의 마음도 살리지 못하면서
관계의 소통과 유대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닻을 내린 건
귀가 순해진 뒤였겠지
그때 비로소
나는 사람이 궁금한 사람이었고
마침내 나는
사람이 힘든 사람이란 걸 알았다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길이보다 깊이를 생각하는 새 아침
아프지도 늙지도 말라는 연하장을 받았다
눈은 펑펑 내리는데
처음으로 나는 눈사람처럼 하얗게 울었다
주저 없이 주저앉아 눈처럼 녹으면서
괜히 열심히 살 뻔했다고 투덜대면서
생각해 보니
발자취는 내 생의 물결무늬자국
(그림 : 김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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