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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양희 - 발자취
    시(詩)/천양희 2023. 3. 7. 16:18

     

    사람이 무서운 건 관계 때문이고

    관계가 힘든 건 마음 때문이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한 구절 한 구절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내게로 왔다

    발자취를 생각한 건

    그때부터였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은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붉은 문장을 이해한 건

    혹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때였다

    사랑과 인식의 출발에 눈을 뜬 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문장을

    지운 뒤였다

    한 사람의 마음도 살리지 못하면서

    관계의 소통과 유대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닻을 내린 건

    귀가 순해진 뒤였겠지

    그때 비로소

    나는 사람이 궁금한 사람이었고

    마침내 나는

    사람이 힘든 사람이란 걸 알았다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길이보다 깊이를 생각하는 새 아침

    아프지도 늙지도 말라는 연하장을 받았다

    눈은 펑펑 내리는데

    처음으로 나는 눈사람처럼 하얗게 울었다

    주저 없이 주저앉아 눈처럼 녹으면서

    괜히 열심히 살 뻔했다고 투덜대면서

    생각해 보니

    발자취는 내 생의 물결무늬자국

    (그림 : 김정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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