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달재 밑 외진 마을
홀로 사는 할머니가
밤저녁에 오는
눈을 무심히 바라보네
물레로 잣는 무명실인 듯
하염없이 내리는
밤눈 소리 듣다가
사람 발소리인가 하고
밖을 내다보다 간두네
한밤중에도 잠 못 든
할머니가
쏟아지는 밤눈을 보는데
눈송이 송이 사이로
언뜻 언뜻 지난 세월 떠오르네
길쌈하다 젖이 불어
종종걸음 달려가는 어미와
배냇짓하는 아기도
눈빛으로 보이네
밤눈이
할머니의 빛바랜 자서전인 양
책 묶은 노끈도 다 풀어진
기승전결 아련한 지난 이야기
밤 내내
조곤조곤 속삭이네
섣달그믐 한밤중
할머니의 눈과 귀
점점 밝아지네
(그림 : 김영근 화백)
'시(詩) > 오탁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탁번 - 해피 버스데이 (0) 2020.04.30 오탁번 - 밥냄새 1 (0) 2019.09.19 오탁번 - 눈 내리는 마을 (0) 2017.12.17 오탁번 - 첫사랑 (0) 2017.05.02 오탁번 - 잠지 (0) 2017.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