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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우는 이 시계는
어쩐지 자명하다
자명한 이치처럼 자명해서
그 울림이 맑고 깊어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자명한 일이라지만
생각만으로도 벌써
이제 막 빛이 번지기 시작한 어느 호수
언저리처럼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한 일이어서
나는 오늘도 이 자명종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놓고
일을 하거나 잠시 기지개를 펴기도 하며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원하는 시간에 자명종을 맞춰 놓으면
갑자기 지금 이 시간으로부터 그
시간까지 하나의 긴
문장이 적히기 시작하는 것 같고
나는 이제부터 그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문장에 형광색 밑줄을 천천히 긋기
시작하는 것 같아
자명종
미리 정해 놓은 시각이 되면 저절로
소리가 울리도록 장치가 되어 있는
현대의 종아
커다란 종도 좋겠지만
커다란 종이 있는 종탑이 있는 성당을
가질 수 있어도 좋겠지만
나는 너 하나로 만족하련다
자명종
자명한 나의
사랑 같은 종아
(그림 : 박준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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