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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숙 - 남산, 11월
    시(詩)/황인숙 2022. 11. 3. 15:46

     

    단풍 든 나무의 겨드랑이에 햇빛이 있다. 왼편, 오른편.
    햇빛은 단풍 든 나무의 앞에 있고 뒤에도 있다.
    우듬지에 있고 가슴께에 있고 뿌리께에 있다.
    단풍 든 나무의 안과 밖, 이파리들, 속이파리,
    사이사이, 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가 있다.

    단풍 든 나무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단풍 든 나무가 한없이 붉고, 노랗고, 한없이 환하다.
    그지없이 맑고 그지없이 순하고 그지없이 따스하다.
    단풍 든 나무가 햇빛을 담쑥 안고 있다.
    행복에 겨워 찰랑거리며.

    싸늘한 바람이 뒤바람이
    햇빛을 켠 단풍나무 주위를 쉴 새 없이 서성인다.
    이 벤치 저 벤치에서 남자들이
    가랑잎처럼 꼬부리고 잠을 자고 있다.

    (그림 : 임진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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