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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중순이면 내면은 초겨울에 들지요
된서리 내리기 전 무꾸와 배차 뽑아 김장을 해야 한답니다
겨울 나려면 백 포기쯤 해야 한다고 김치 곽을 파랍니다
지난겨울 김치 곽에선 고라니가 자고 가고
퇴끼 새끼가 들어 자다가 아재한테 들켜 줄행랑쳤답니다
군불 그러담은 화리에 고구마 묻고 하늘 보다가
참 별도 창창하다 낼 아침엔 된서리 내리겠네
장갑이랑 목도리랑 벙거지 찾겠다고
장농 두적대다가 구박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볕들면 콩마답 할 테니 어데 가지 말라 했는데
낼은 첫눈이 왔음 좋겠다며
무슨 약조라도 한 듯 첫눈을 기다립니다
아주 오래전 구들 아랫목에 엎드려 주간지 보며
미지의 여자와 펜팔 한다고 설레던 초겨울
일찌감치 김장하고 긴 겨울 건너는 내면에서는
저마다 다리를 놓습니다 누가 건너올까마는
간절해지는 건 어쩌지 못합니다
(그림 : 신창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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