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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진 - 비로소, 들리다시(詩)/시(詩) 2022. 9. 22. 17:22
말을 내려놓기 위해 산을 오른다
허리를 굽히고 혀를 꺼내 오른손에 쥐고 오를 때
비로소 들린다, 말
계곡물은 작은 돌에서 큰 돌 큰 돌에서 나무
나무에서 구름 위로 음계를 그리고
새들은 그 음계의 중간쯤에 있다
바위산은 가장 무겁고 두꺼운 시간의 책장
참나무 단풍나무 서로 다른 페이지로 흔들린다
단풍잎은 바람의 입술에 입술을 맞대고
뜨겁다고 느끼고 간지럽다고 말한다
발자국 소리에도 까르르 웃는 풀꽃의 이름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까르르 풀꽃
말로는 형용할 수 없어
말을 내려놓는다
내려놓아야 비로소 들리는 저, 말
듣기 위해 내려놓는다, 말
(그림 : 남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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