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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중림동 파출소시(詩)/시(詩) 2022. 7. 6. 21:19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밤 덜컹, 출입문이 열리더니
쓰레기봉투 하나 날아들었다
얼핏 보기에 어느 곳에서
유용하게 쓰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만 같아 보였는데
서부역 주변에 오래 머문 탓에 가볍다
대로변을 날아다니는 것은 불법이므로 당직은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바로 묻는다
이름이 뭐냐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느냐고
무슨 죄를 짓고 날아다니느냐고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며 내력을 캐는데 열중이다
같이 먹고 살자며 당직은 나직이 속삭이며 어르고 달랜다
잘못 날아들어 왔으니 1초만 여기서 내보내 주면
귀찮게 하지 않고 바로 죽어버리겠다고 도로 호통친다
바람 따라 날아들어 왔지만
한 번 들어오면 이름을 밝혀야 하는 곳
당직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다시 한 번 정중히 묻는다
이름이 뭐냐
쓰레기라니까요
(그림 : 홍성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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