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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향 - 물 길러 간다시(詩)/시(詩) 2022. 5. 25. 21:05
저녁밥 짓는 연기
밀밭 어둠처럼 흥건히 깔릴 때
찌그덕 찌그덕 빈 물지개 지고
동구 밖으로 쉼없이 걸어나간다
내 키의 석자는 됨직한 깊은 우물속에
두레박을 던져 넣고
퍼 담아도 퍼 담아도 담은 만큼 채워지는 물속
목욕하는 성근 별을 퍼올린다
오르다 떨어져나간 별들은 사금파리처럼 하얗게 깨어진다
깻묵 묻은 내 얼굴도 헹구어 퍼담고
살아 꿈틀거리는 별을 모아
가만 가만 숨죽이며 온다
큰 항아리에 부어 두고 뚜껑을 닫는다
매일 매일 조금씩 꺼내어
마시고 음미하면서 샛별을 꿈꾼다
항아리 바닥이 거의 보일 쯤이면
나는 또 그짓을 하러 동구 밖으로 줄행랑 친다
(그림 : 신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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