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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로 지었다고 다 쌀밥이 아니지
비결은, 쌀에게 자연의 기억을 회복시켜야 해
마른 쌀을 찬물에 한 시간쯤 담가
허수아비 춤추던 들판을 불러들여 봐
쌀눈이 빠지지 않도록 살살 씻어
솥에 붓고 손등까지 물을 채우면
발목이 물에 잠긴 벼처럼 일어날 거야
센 불에서 끓여야만
달아오른 솥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땡볕에 땀 흘리듯 익어갈 테니
불끄기 전, 약한 불로 뜸 들여 주면
황금들녘의 벼처럼 순하게 돼
솥뚜껑 열어 김 올라오면 잠시 눈을 감아봐
밥을 풀 땐, 주걱으로 공기를 섞어 담아야
쌀 중심에서 나온 땀의 쓴맛도
고향이야기 모락이는 입안에서 고소한
자르르 윤기 흐르는 쌀밥
(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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