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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집 떠난 발자국 지웠고
함박눈은 바람 무늬 덮었습니다.
감나무와 처마 끝에서 권태 깁던 왕거미,
서까래 더듬던 말벌 안부도 치매만 같아
양철지붕 흰머리가 더욱 눈 시렸습니다.
창호지 뚫고 무시로 들락대던 바람도
대 끊긴 무덤에서 햇볕 동냥하는지
마을로 휘어진 길엔 정적 두텁고
똥개들 호통 모르는 눈길에
객쩍은 발자국만 천근만근 깊이로 남을까
도둑고양이 숨결로 빈집 지나칠 때
연로한 처마 귓불이
고드름 따라 조금 더 이울었습니다.
(그림 : 임장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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