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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꽃이 흔들리고 있다.
물살이 한 물살을 밀고. 또 한 물살이 한 물살을 밀어 강물이 나아가듯 흰 나비가
흔들림의 결을 만들고 있다.
묵은 땅에 일군 자그마한 무밭의 아침,
버드나무 몇 그루가 흰 나비 날개 끝에서 번지는 공중의 떨림을 조용조용 보고 있
다. 나도 한참 보고 있다.
바람 불지 않는데 흔들리는 것,
마음이 떨리는 것,
성스러운 시간이 움직이는 것,
나의 외진 마음이 한 물살을 밀고, 그 물살이 또 한 물살을 밀어 너에게 가 닿는 것.
그렇게 너와 나는 연결돼 있다. 하나가 돼 있다.
넓고 아득한 하늘 외진 곳에 태어난 빛이 무꽃에 와 닿듯,
무꽃 옆에서 흰 나비가, 넓고 아득한 공중의 외진 데까지
무꽃의 흰빛을 밀어 밀어서 가 닿게 하듯,
(그림 : 노숙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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