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봉 - 봄의 속도시(詩)/배한봉 2020. 3. 24. 15:39
봄은 어떤 속도로 오느냐는
아이의 물음에
과학자는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라 말하더군.
며칠 내내 부풀기만 하던 분홍빛 꽃봉오리가
한꺼번에, 온통 눈부시게 터져
미세먼지 뒤덮였던 하늘이 드맑게 눈을 뜨는 아침.
이걸 보았다면 과학자는
그 꽃나무 옆 시냇물이
구름을 타고 여행 갔다 돌아와
하늘의 금모래 같기도 뱀 비늘 같기도 한 별 이야기를
꽃망울들에 들려주는 속도라 말하지 않았을까.
사람에게 스며든 꽃향기가
사람의 숨결로 어디 까마득한 데 여행가는 때
먼 옛날 나였던 꽃나무가
지금은 사람이 되었다고,
꽃나무가 사람이 되는 속도로 봄은 온다고 들려주면
아이는 시시한 마법이라고
순 거짓말쟁이라고 나를 놀려대겠지.
그러나 먼 훗날의 아이가
나무 안에서 분홍빛 꽃눈으로 자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면
봄의 속도는 차츰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오늘을 잊어버리고 내일도 모레도 잊어버리고
드디어는 고요에 가 닿는 영원이 되어 있지 않을까(그림 : 설종보 화백)
Lin Hai - Eternity
'시(詩) > 배한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한봉 - 이 시대의 변죽 (0) 2021.07.07 배한봉 - 동백꽃 사랑 (0) 2021.04.08 배한봉 - 푸른 것들의 조그마한 항구 (0) 2019.10.24 배한봉 - 부지깽이꽃 (0) 2019.10.05 배한봉 - 희망을 위하여 (0) 2019.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