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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우현 - 도마의 일기
    시(詩)/시(詩) 2022. 2. 3. 14:27

     

    도마는 저를 거쳐 간 이름을 기억한다

    초록 물이 두 숟가락쯤 빠지던 시금치

    끌어안고 죽은 바다가 등에서 출렁거리던 자반

    냉장실에서 시간을 과식한 양지머리

    경쾌한 도마의 언어로 탁탁 슥슥

    칼의 후기는 늘어짐이 없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강약을 조절하며

    가는 직선과 사선을 고집한다

    맛의 시작을 풀어 쓰기위해

    가위나 국자는 사양한다

    아무나 아무 거나가 아닌

    꼭 함께하는 사이다

    추운 아침, 대파가 맵다고 쓴다

    저녁의 문장을 기대하듯

    종일 서성이며 분주하다

    준비된 재료가 떨어지고 저녁의 빗장이 걸린다

    도마의 심장 쪽으로 몰려든 문장마다

    나비잠의 잠꼬대가 환해진다

    동태찌개 부추전 돼지불고기 쑥갓무침 콩나물

    내일의 메뉴판이 비상구 불빛에 얌전히 들키는 시간

    미리 눈치 챈 식당 도마

    탁 탁 칼의 꿈을 준비한다

    (그림 : 방정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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