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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흰 고무신에 대한 소고시(詩)/복효근 2021. 11. 29. 12:35
윗집 죽산댁 할머니가
댓돌 위에 눈부시게 닦아놓은 남자 흰 고무신 한 켤레
영감님 쓰러져 신발 한번 신어보지 못한 몇 년 동안도
가신 지 몇 년이 지난 오늘도
늘 그 자리
바람이 신어보는 신발
가끔 눈발이나 신어보는 그것에
무슨 먼지와 흙이 얼마나 묻었다고
마루를 내려서기도 힘든 노구를 움직여
없는 남편 신발을 닦아 당신 신발 곁에 놓으시네
저 신발 신고
꿈결에 오셨을라나
후생의 먼길을 걷고 계실라나
주인 없는 신발을 닦는,
신을 일 없는 신발을 놓아두는 저 마음 헤아릴 수 있다면
바위 석가탑을 세우는 일을 알 수 있으리
작은 배 같은 신발 한 켤레로
이생과 후생이 이웃 같은 시간이 이렇게 있네
(그림 : 정인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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