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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 호박꽃 사랑시(詩)/시(詩) 2021. 11. 9. 22:58
호박꽃도 꽃은 꽃이어서 좀 펑퍼짐해도
꽃이어서
아무데나 피고 싶지 않아서
울타리를 기어오르거나 아니면 낮은 곳으로
아예 절푸데기 주저앉는 것이다. 호박꽃은
비록 선홍빛 꽃잎은 아니지만
꽃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질펀하게 자리를 펴는 것이다.
엉덩이가 짓무른지 오래다. 자세를 바꿔야
사는 일도 탱탱해진다며 햇볕 쨍쨍하게 손을 내밀면
은근슬쩍 기대며 순간
꽃 문을 닫아버리는 호박꽃.
너 잘 만났다고
호박꽃, 밤새 호호거린다
호박꽃 속에서는 누구든 눈을 잃어버린다는데
간드러진 웃음소리에 애호박이 열린다는데
화끈하게 한 번은 치마 밑에 불을 지르고
함께 혼절할 사람 만나면
올라앉은 담벼락인들 무너져도 좋겠다는
저 누런 꽃.
(그림 : 정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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