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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숙 - 장항선 상행열차시(詩)/시(詩) 2021. 10. 16. 12:10
완행열차는 쌀자루와 김치도 승객이었다
누군가의 보따리에서 엎질러진 신김치 냄새는
손을 흔들며 배웅하던 어머니 냄새였다
목청껏 내지른 기적 소리가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간이역을 들러 느릿느릿 달렸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천안역 간이매점
딱 5분 승객들을 쏟아놓으면
어떤 이는 담배 한 개비 맛나게 태우거나
낯선 얼굴끼리 탁자에 둘러서서
뜨끈한 우동 국물 불어 터진 국숫발
후루룩 허기진 목으로 밀어 넣었다
차표를 구하지 못한 입석 승객들
좁은 통로에 주저앉고
수시로 오가는 간이매점 카트는
간신히 길을 밀고 지나갔다
“계란이 왔습니다. 고소한 천안 호두과자도 있습니다”
낭랑한 목소리 자장가 삼아
한숨 눈 붙이고 나면 드디어 서울이었다
그 멀고 멀다는 서울,
느린 속도 구불구불 열차를 밀고 서울역에 닿아있었다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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